
유전자가 아니라 환경이 전부다
1. 현미경 너머로 배운 생명 과학의 가장 위대한 격언
저자가 대학원 과정에서 줄기세포를 처음으로 복제하며 배운 스승의 가르침은 매우 단순하지만 생명 전체의 원리를 꿰뚫는 강력한 지혜였습니다. 그것은 페트리 접시 안에서 연구하는 세포가 시들시들하게 병들거나 아프기 시작할 때, 세포 자체를 탓하거나 의심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세포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병든 세포에게 맑고 깨끗하며 영양분이 풍부한 최적의 환경을 다시 만들어주면, 비실거리던 세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급격하게 활력을 되찾고 싱싱하게 되살아납니다. 하지만 과학계는 디엔에이의 유전 암호가 발견된 이후 이러한 환경의 중요성을 완전히 잊어버렸고, 오직 유전자만이 생명 현상을 지배하고 결정한다는 잘못된 유전자 결정론의 맹신 속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2. 우리를 무기력한 피해자로 만드는 유전자 맹신의 덫
오늘날 수많은 현대인들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자신의 건강과 삶의 궤적을 100퍼센트 장악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 중에 암이나 당뇨 환자가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속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매일매일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떨며 지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각은 인간을 스스로의 건강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숙명의 피해자로 낙인찍어 버립니다. 그러나 헌팅턴 무도병이나 낭성 섬유증처럼 오직 단 하나의 결함 있는 유전자 때문에 무조건 발병하는 순수 유전 질환은 전체 인류의 2퍼센트 미만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대부분의 만성 질환들은 유전자 하나가 일으키는 재앙이 아니라, 수많은 유전자와 개인이 마주하는 복잡한 환경 요인이 얽히고설키며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입니다.
3. 세포라는 단백질 기계를 움직이는 역동적인 원리
인간의 몸을 세포 단위로 아주 정밀하게 해체해서 살펴보면, 우리 몸은 결국 이십 가지의 서로 다른 아미노산들이 입체적인 사슬 모양으로 정교하게 엮여 있는 거대한 단백질 기계와 같습니다. 몸을 구동하는 데 필요한 십만 개 이상의 다양한 단백질들은 마치 척추뼈가 유연하게 움직이는 뱀의 등뼈처럼, 전기적인 전하의 상태에 따라 끊임없이 모양을 비틀고 꼬며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단백질 분자가 다른 보완적인 분자와 결합하여 양전하와 음전하의 균형이 바뀌는 순간, 단백질 사슬은 수천 분의 일 초라는 짧은 찰나에 구조를 역동적으로 변형시키며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세포 속에서 호흡하고 소화하며 근육을 수축시키는 생명의 모든 신비로운 움직임들은 이처럼 단백질이라는 아주 작은 분자 기어들이 서로 맞물려 모양을 바꾸는 역동적인 힘에서 나옵니다.
4.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대반전과 후성유전학의 서막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이 십만 개가 넘기 때문에, 이를 만들어내는 유전자 설계도 역시 최소한 십이만 개 이상 존재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밝혀진 인간의 총 유전자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초라한 이만 오천 개에 불과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결과는 유전자가 스스로 작동 여부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지배자가 아님을 세상에 천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유전자는 스스로 켜지거나 꺼질 수 없는 순수한 청사진일 뿐이며, 세포핵 속에서 디엔에이를 겉옷처럼 빽빽하게 감싸고 있는 조절 단백질 셔츠를 벗겨내어 설계도를 읽도록 만드는 진짜 주인공은 바로 외부 환경에서 들어오는 신호입니다.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전혀 바꾸지 않고도 환경 신호에 따라 하나의 설계도에서 이천 가지가 넘는 변형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에피제네틱스 즉, 후성유전학의 발견은 우리에게 부모의 유전자를 탓하며 머무르지 않고 음식과 환경, 그리고 마음을 통해 스스로의 생물학적 운명을 완전히 재창조할 수 있다는 위대한 자립의 열쇠를 쥐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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