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왜 진화하는가
우리가 왜 암에 걸리는지 생각해보는 것으로 시작해봅시다. 암이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서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건강에 더 신경을 쓰도록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 생기는 것인지 혹은 우리가 나이가 들어 자녀들에게 짐이 되기 전에 일찍 죽는 것이 자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인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추측은 틀렸습니다. 우리가 암에 걸리는 진짜 이유는 몸속에서 살아남아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들이 더 많은 자손 세포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즉 암은 인류를 위해서나 우리 자신을 위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세포 자신의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입니다.
우리 몸은 본래 수많은 세포가 완벽하게 협력하는 거대한 사회와 같습니다. 세포들은 서로 자원을 나누고 몸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며 각자의 역할을 다합니다. 하지만 암세포는 이러한 협력 시스템을 악용하여 정상적인 이웃 세포들보다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합니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단 내에서 특정 유전자의 비율이 변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몸속에서도 세포가 분열하거나 죽을 때마다 이런 진화 과정이 일어납니다. 세포들 역시 자연 생태계의 동식물처럼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두고 서로 경쟁합니다. 불행하게도 세포들이 이웃 세포를 이기고 번성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몸의 통제를 무시하고 멋대로 분열하는 반칙을 저지르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암이 시작되는 원리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진화라고 하면 수천 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는 아주 느린 변화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인간의 짧은 수명 안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 암이 생길 수 있는지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세포의 진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릅니다. 암세포 하나가 분열하여 다음 세대를 만드는 데는 고작 하루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며 세포의 수는 수십억 개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 사람의 일생 동안 몸속에서 일어나는 세포 진화의 양은 인류 전체가 지금까지 겪어온 진화의 역사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암세포가 결국 몸을 파괴하고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것을 과연 진화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계에서도 종종 집단 전체를 멸종으로 이끄는 파멸적인 진화가 일어나며 암세포 역시 스스로 진화의 막다른 길로 걸어 들어가는 현상일 뿐입니다.
자연계에서 진화가 일어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며 암세포 역시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완벽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다양성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완전히 똑같지 않습니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디엔에이를 복제하는데 이때 어쩔 수 없이 오류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세포들 사이에는 유전적인 차이가 생겨납니다. 디엔에이가 발현되는 방식이 달라지는 후성유전학적인 차이도 세포의 행동을 다르게 만듭니다. 두 번째는 유전성입니다. 부모의 특징이 자식에게 유전되듯이 세포에 생긴 돌연변이나 유전적 차이들은 세포가 분열할 때 다음 세대의 세포로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우리 몸은 최초의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된 거대한 가계도와 같으며 돌연변이도 이 가계도를 따라 유전됩니다. 세 번째는 차별적 번식 성공률입니다. 어떤 세포들은 정상적인 세포들보다 훨씬 더 빨리 분열하고 더 오래 살아남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이런 유리한 특징을 가진 세포들은 점점 더 많은 자손을 남기며 우리 몸속에서 엄청나게 무성한 가지를 뻗어 나가게 됩니다.
암이라는 질병을 대할 때 흔히 암세포를 무조건 때려잡아야 할 적으로 생각하고 전쟁을 벌이듯 강력한 공격을 퍼붓곤 합니다. 하지만 적의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무조건 강한 약을 쓰면 약물에 저항하는 독한 세포들만 살아남아 결국 암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암세포의 시선에서 우리 몸은 그저 자신을 복제하는 데 필요한 훌륭한 먹잇감이자 원자재일 뿐입니다. 면역 세포는 어떻게든 피해야 할 무서운 포식자이고 몸속의 다른 장기들은 새롭게 정복해야 할 새로운 영토입니다. 암세포에게 환자의 몸은 목적을 달성하면 버려도 되는 소모품과 같습니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동식물의 특징이 어떤 목적을 위해 생겨났다고 가정하는 목적론적 사고를 자주 사용합니다. 얼룩말의 무늬가 포식자를 헷갈리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암세포가 영양분을 엄청나게 먹어 치우고 빠르게 분열하는 것도 오직 세포 자신의 번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화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암세포가 우리를 파괴하려는 악의적인 의도를 가졌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눈먼 자연의 법칙에 따라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우리 몸을 파괴하게 된 것뿐입니다.
유명한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개념을 통해 생물은 단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운반 수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점을 우리 몸속의 세포에 적용해 보면 진화는 무조건 전체를 위해 희생하는 착한 세포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 챙기는 이기적인 암세포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암세포는 다세포 생물이라는 완벽한 협력 사회에서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규칙을 어기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반칙쟁이입니다. 암이 도대체 왜 진화하는지 이해하려면 암세포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 몸의 규칙을 어기고 다른 세포들을 속이면서 번성하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처럼 암은 복잡한 진화와 생태계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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