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포 협력 속 얌체 행동
암세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아주 나쁜 룸메이트를 상상해 봅시다. 당신과 함께 사는 이 룸메이트는 자기 몫의 집안일이나 청소는 절대 하지 않고 당신이 사다 놓은 음식을 허락도 없이 모두 먹어 치웁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과 똑같이 게으른 친구들을 집으로 계속 불러들여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듭니다. 암세포가 우리 몸속에서 하는 일이 바로 이 끔찍한 룸메이트와 같습니다. 평화롭고 규칙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우리 몸이라는 거대한 사회에 나타나 마음대로 규칙을 어기고 다른 세포들에게 가야 할 자원까지 모두 빼앗아 가는 불청객입니다. 즉 암은 다세포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협력이라는 아름다운 규칙을 깨뜨리는 이기적인 반칙쟁이입니다.
과학자나 의사들은 저마다 암을 다르게 정의하곤 합니다. 생물학자는 세포가 죽지 않고 무한히 분열하는 특징에 집중하고 병리학자는 세포의 원래 모양이나 주변 조직이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를 보며 암을 진단합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의사는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고 침투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이 모든 다양한 관점을 하나로 꿰뚫는 근본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바로 암을 세포들의 완벽한 협력을 배신하는 반칙쟁이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화적인 관점에서 암을 이해하면 암이 도대체 무엇이며 몸속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번성하는지 훨씬 더 크고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무려 삼십조 개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엄청난 수의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구의 전체 인구보다 수천 배나 많은 이 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온전한 사람으로 기능하려면 말 그대로 완벽한 협력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세포들은 다 함께 살아남기 위해 엄격한 규칙이 담긴 다세포 생물의 지침서를 철저히 따릅니다. 첫째 세포들은 함부로 분열하지 않고 전체적인 몸의 구조에 맞게 자신의 숫자를 통제합니다. 둘째 자신의 유전자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몸 전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조직을 보호합니다. 셋째 산소와 영양분을 혼자 독차지하지 않고 핏줄을 통해 다른 세포들과 골고루 나눕니다. 넷째 간에서 피를 맑게 하거나 심장에서 피를 뿜어내는 등 각자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다섯째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조직의 형태를 안전하게 보존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다세포 협력의 핵심 원리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암세포는 이 모든 협력의 규칙을 철저히 무시합니다. 암세포는 지침서를 따르지 않고 끝없이 분열하여 자신의 숫자만 늘리며 주변의 영양분을 엄청나게 먹어 치웁니다. 본래 자신이 몸속에서 해야 할 역할은 완전히 팽개친 채 주변 환경에 산성 노폐물을 마구 배출하여 정상 세포들이 살아가는 생태계를 엉망으로 만듭니다. 전체의 생존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정상 세포들 사이에서 오직 자기 자신만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기적인 암세포는 당장은 주변의 착한 정상 세포들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고 몸속 환경에서 더 잘 살아남습니다. 규칙을 어기는 대가로 생존의 우위를 점하게 되고 결국 암세포의 숫자가 무섭게 불어나 우리 몸의 정상적인 조직을 파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화 생물학의 아주 흥미롭고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 몸속에서 세포들끼리만 경쟁을 벌인다면 당연히 규칙을 어기고 이기적으로 자원을 독차지하는 암세포가 훨씬 유리합니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서 사람이나 동물 같은 생명체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세포들이 서로 잘 협력하고 반칙을 저지르는 암세포를 훌륭하게 통제하는 생명체만이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 자신의 자손을 남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세포 단위에서는 이기적인 반칙쟁이가 이기지만 생물 전체 단위에서는 세포들이 협력하는 개체가 승리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다세포 생물들은 오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며 몸속에 나타나는 이기적인 반칙쟁이들을 귀신같이 찾아내고 억제하는 아주 강력하고 복잡한 방어 시스템을 발달시켰습니다.
우리 몸은 암세포의 끔찍한 반칙을 막기 위해 크게 세 가지의 철저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방어선은 세포 스스로의 양심입니다. 모든 세포 안에는 자신의 내부 상태를 엄격하게 감시하는 감시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디엔에이가 망가진 것을 발견하면 특정 유전자가 나서서 세포의 분열을 즉시 멈추게 하거나 수리가 불가능할 경우 세포 스스로 파괴되도록 자폭 명령을 내립니다. 두 번째 방어선은 이웃 세포들의 촘촘한 감시망입니다. 세포들은 혼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이웃 세포들이 정상적으로 행동하는지 끊임없이 서로 살피고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만약 어떤 세포가 너무 빨리 분열하거나 자원을 많이 탐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면 이웃 세포들은 그 세포에게 당장 자살하라는 강력한 경고 신호를 보내어 위협을 사전에 차단합니다. 세 번째 방어선은 우리 몸의 거대한 경찰 조직인 면역 시스템입니다. 무장한 경찰과 같은 면역 세포들은 몸 구석구석을 쉴 새 없이 순찰하며 정상적이지 않은 이상한 단백질을 만들어내거나 협력 규칙을 어기는 암세포를 냄새 맡듯 찾아내어 직접 공격하고 제거해 버립니다.
세포 내부에 있는 종양 억제 유전자는 단순히 켜지고 꺼지는 단순한 스위치가 아닙니다. 마치 똑똑한 화재경보기가 연기와 열을 동시에 감지해야만 진짜 불이 났다고 판단하여 오작동을 줄이는 것처럼 이 유전자는 세포의 분열 속도 주변의 성장 신호 물질의 양 그리고 유전자 손상 정도 등 수많은 정보를 한데 모아 종합적으로 계산하고 분석합니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 멀쩡한 정상 세포까지 적으로 간주해 죽여버려서 몸을 일찍 늙고 병들게 만들며 반대로 너무 둔감하게 반응하면 진짜 암세포를 놓쳐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삼십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는 이렇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스스로 계산하고 판단하는 놀라운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뇌뿐만 아니라 세포들의 집단 지성을 통해 매 순간 이기적인 반칙쟁이들을 억제하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암은 결국 이러한 완벽하고 촘촘해 보이는 세포들의 협력 체계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며 빈틈을 파고드는 매우 끈질기고 복잡한 자연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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