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자궁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암과 함께 살아갑니다 암은 어느 날 갑자기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단계에 늘 존재하는 동반자입니다 심지어 암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사람의 피부에도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돌연변이 세포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기미나 점은 물론이고 겉으로 보기에 완벽하게 뽀얗고 정상적인 피부 세포들조차도 암세포와 비슷한 수준의 끔찍한 돌연변이를 무수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분열하고 진화하기 때문에 암은 우리가 다세포 생명체로 살아가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는 보통 별다른 문제 없이 이러한 미세한 암세포들을 몸에 지니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하나의 수정란이 분열하여 거대한 아기로 자라나는 과정은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습니다 줄의 왼쪽 아래에는 세포들이 통제를 벗어나 마음대로 증식하는 혼돈의 구덩이가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세포의 성장이 멈춰버려 생명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정체의 늪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이 두 가지 치명적인 위험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세포에게 너무 많은 자유를 주어 왼쪽으로 기울면 암이라는 혼돈에 빠지게 되고 반대로 세포를 너무 엄격하게 통제하여 오른쪽으로 기울면 상처를 치료하거나 몸의 장기를 만들어낼 수 없게 됩니다 아기가 뱃속에서 무사히 자라나 세상에 나오는 것은 이 엄청나게 위험한 진화적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이 줄타기를 더욱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것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가 태아의 세포 안에서 벌이는 조용한 전투입니다 밀크셰이크를 나누어 먹는 아이들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어머니의 유전자는 밀크셰이크라는 제한된 영양분을 미래에 태어날 다른 자녀들을 위해 아껴두려 하기 때문에 현재 태아의 성장을 적절히 억제하려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전자는 자신의 아이가 밀크셰이크를 최대한 많이 먹고 빠르고 거대하게 자라기를 원합니다 아기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태반은 바로 이 두 유전자가 충돌하는 가장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태반이 어머니의 자궁벽을 깊숙이 파고드는 과정은 암세포가 다른 조직으로 침투하는 모습과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으며 이는 철저하게 아버지의 유전자가 주도하는 공격적인 생존 전략입니다
우리가 어른으로 성장하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낡은 세포를 버리고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줄기세포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세포가 무한정 분열할 수 있는 능력은 필연적으로 암에 걸릴 위험을 높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염색체 끝부분을 통해 분열 횟수를 세고 제한함으로써 암을 억제하지만 이로 인해 세포가 노화되고 우리의 몸도 늙어가게 됩니다 암을 막기 위해 세포의 분열을 강력하게 억제하면 몸이 너무 빨리 늙어버리고 반대로 세포를 젊게 유지하려고 분열을 허락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치솟습니다 상처가 나서 피가 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를 덮기 위해 세포들이 빠르게 이동하고 증식해야 하는데 암세포는 바로 이 치유 신호를 교묘하게 가로채서 자신의 세력을 넓히는 훌륭한 기회로 악용합니다
우리를 질병으로부터 지켜주는 면역 시스템 역시 암의 위험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 세포들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외부의 병균을 물리치기 위해 스스로 유전자를 변형시키고 빠르게 진화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러한 면역 세포의 자유로운 진화 능력 덕분에 우리는 병에 걸려 죽지 않고 살아남지만 그 대가로 소아 백혈병 같은 치명적인 면역 체계의 암이 발생할 수 있는 취약점을 안게 되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발생한 소아 백혈병 집단 발병 사례를 보면 어릴 때 가벼운 감염을 겪지 않아 면역 체계가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아이들이 나중에 강력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때 백혈병에 걸릴 위험이 훨씬 높았습니다 즉 우리 몸을 지키는 강력한 방어 무기 자체가 암을 유발하는 양날의 검이 되는 것입니다
자손을 남기고 번식하는 생식 능력 역시 암의 위험성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유방암과 난소암의 위험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왜 진화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았는지 조사해 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과거 수렵 채집 시대나 피임약이 없던 시절에 이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들이 오히려 돌연변이가 없는 여성들보다 훨씬 더 많은 아이를 낳았습니다 암을 억제하는 세포의 제어 기능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는 대신 여성의 생식 능력을 높여서 진화적으로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의 조상들보다 훨씬 풍족하게 먹고 적게 움직이며 더 오래 살기 때문에 이 느슨해진 통제력이 암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결국 암은 우리가 생명체로서 튼튼하게 자라나고 치명적인 병균과 싸우며 성공적으로 자손을 남기기 위해 지불해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진화적인 대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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