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나무 전체에 걸쳐 있는 암
세상에서 가장 몸집이 큰 동물인 코끼리나 고래를 떠올려 봅시다 우리는 흔히 몸집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수명이 길면 길수록 암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암은 세포가 분열할 때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서 발생하는데 몸집이 큰 동물은 그만큼 몸속에 세포의 숫자가 훨씬 더 많고 수명이 길면 평생 동안 세포가 분열하는 횟수도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쥐와 사람을 비교해 보면 사람은 쥐보다 세포 수가 천 배나 많고 수명도 삼십 배 이상 깁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쥐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삼만 배나 높아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과 쥐의 암 발생률은 비슷하며 심지어 사람보다 몸집이 수백 배 큰 코끼리나 수천 배 거대한 고래조차도 암에 거의 걸리지 않습니다 영국의 과학자 리처드 피토는 생물학적으로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이 신기한 현상을 처음 발견했고 사람들은 이것을 피토의 역설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피토의 역설은 우리가 암을 이해하고 치료법을 찾는 데 아주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몸집이 거대한 동물이 암이라는 무서운 질병을 피할 수 있게 된 비밀은 바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진화에 있습니다 코끼리나 고래의 조상들은 몸집을 키우는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아주 심각한 생존의 문제에 부딪혔을 것입니다 몸집이 커지면 포식자의 공격을 피하거나 먹이를 구하는 데는 매우 유리하지만 몸속에 세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암에 걸려 일찍 죽을 위험도 함께 커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덩치가 큰 동물들이 암을 막아낼 특별한 방법을 스스로 찾지 못했다면 그들은 일찌감치 지구상에서 멸종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자연은 늘 그렇듯이 놀라운 해결책을 찾아냈습니다 암에 잘 걸리는 개체들은 번식하지 못하고 사라졌으며 암을 이겨내는 강력한 방어 시스템을 우연히 갖추게 된 개체들만 살아남아 자신의 훌륭한 유전자를 자손에게 물려준 것입니다 결국 오늘날 살아남은 거대한 야생 동물들은 수백만 년 동안 암과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하여 몸속에 아주 훌륭한 암 억제 능력을 진화시킨 진정한 챔피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가 암을 막아내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게 되면 생명체가 가진 자연의 지혜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우리 몸에는 피오십삼이라는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암 억제 유전자가 있습니다 이 유전자는 세포 안에 디엔에이가 망가진 것을 발견하면 세포의 분열을 즉시 멈추게 하고 수리가 불가능하면 스스로 자살하도록 명령을 내려서 암세포가 생겨나는 것을 초기에 막아주는 아주 든든한 경찰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람은 이 중요한 피오십삼 유전자를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각각 하나씩 물려받아 평생 딱 두 개만 가지고 살아갑니다 만약 이 두 개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로 인해 모두 고장 나면 사람은 암에 아주 취약해져서 젊은 나이에도 심각한 암에 걸리게 됩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놀랍게도 코끼리의 유전자를 조사해 보니 코끼리는 이 피오십삼 유전자를 무려 마흔 개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코끼리는 몸집을 거대하게 키우는 진화 과정에서 암에 걸릴 위험이 점점 커지자 암을 억제하는 경찰관의 숫자를 스무 배나 팍팍 늘리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코끼리의 세포는 유전자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이 수많은 경찰관들이 즉시 출동하여 고장 난 세포를 가차 없이 죽여버리기 때문에 암세포가 자라날 틈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바다 깊은 곳에 사는 거대한 고래도 코끼리처럼 피오십삼 유전자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북극고래를 비롯한 거대한 고래들은 코끼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암을 이겨냅니다 고래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디엔에이가 망가졌을 때 그것을 아주 빠르고 완벽하게 수리해 내는 능력이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뛰어나게 발달해 있습니다 코끼리가 망가진 세포를 아예 죽여서 없애는 단호한 전략을 선택했다면 고래는 망가진 유전자를 고쳐서 다시 쓰는 아주 정교하고 꼼꼼한 수리 기술을 진화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계의 다양한 동물들은 저마다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과 진화의 역사에 맞게 아주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암이라는 공통의 적을 훌륭하게 물리치고 있습니다 과거 쥐라기 시대에 살았던 거대한 공룡들 역시 뼈 화석을 연구해 보면 암의 흔적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그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고 꽤 오랫동안 살았던 것을 보면 분명 그들도 암을 억제하는 자신만의 특별한 유전적 방어 무기를 몸속에 훌륭하게 갖추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반면에 야생 동물이 아닌 인간과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개들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귀엽고 멋진 개를 얻기 위해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인위적으로 교배를 시켜 수많은 품종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몸집이 아주 큰 그레이트데인이나 세인트버나드 같은 개들은 자연적인 진화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억지로 몸집이 커진 동물들입니다 이 덩치 큰 개들은 코끼리나 고래처럼 오랜 시간 동안 암을 억제하는 튼튼한 방어 능력을 진화시킬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몸집은 갑자기 거대해졌지만 몸속의 암 방어 시스템은 작은 개 시절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작은 품종의 개들보다 뼈암을 비롯한 각종 심각한 암에 걸릴 확률이 엄청나게 높고 수명도 훨씬 짧습니다 이 슬픈 사실은 암을 억제하는 능력이 하루아침에 뚝딱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서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아주 천천히 그리고 정교하게 다듬어지는 진화의 위대한 산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몸집이 큰 야생 동물들이 진화 과정을 통해 암을 멋지게 극복해 낸 경이로운 모습에서 인간의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롭고 희망적인 아이디어를 잔뜩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암에 걸리면 무조건 독하고 강력한 약을 써서 암세포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죽이는 방식에만 맹목적으로 의존해 왔습니다 하지만 피토의 역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짜 훌륭한 교훈은 자연이 이미 암을 통제하고 억제하는 가장 완벽하고 지혜로운 방법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코끼리가 어떻게 망가진 세포를 찾아내어 빠르게 제거하는지 고래가 어떻게 유전자를 완벽하게 수리하는지 그리고 또 다른 동물들이 어떻게 몸속 생태계를 튼튼하고 건강하게 유지하여 암세포가 자라지 못하게 막는지 자연의 지혜를 겸손한 자세로 찬찬히 배워야 합니다 자연이 수백만 년 동안 스스로 실험하고 완벽하게 증명해 낸 이 놀라운 암 억제 전략들을 인간의 의학 기술에 무사히 적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암을 막연히 두려워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통제하며 아주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롭고 훌륭한 길을 반드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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