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에서 전업치병하다
1. 오대산으로의 떠남과 전업치병의 시작
건강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다시 이를 회복하는 일은 성을 함락하는 공성전처럼 기존의 건강을 지키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저자는 건강을 되찾고 치유 노력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삶의 바탕이 되었던 것들과 절연하고 집을 떠나 오대산으로 향했습니다. 암을 가져온 물리적·관계적 공간에서 완전히 벗어나 오직 치병에만 전념한다는 뜻으로 이를 전업치병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다행히 형님의 친구분 덕분에 산세가 빼어나고 해발 700미터 고지에 위치한 인근 생태 마을 시설을 통째로 빌려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 여행객을 받지 않는 조용한 환경에서 저자는 그해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 머무르며, 먹고 운동하고 쉬고 명상하고 공부하는 등 오직 치유에만 몰두하는 수도자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맑은 숲의 공기와 따뜻한 흙 내음을 맡으며 도시의 삶에 찌들었던 먼지를 씻어내자 몸이 치유되고 있음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2. 가족들의 헌신과 주변의 따뜻한 배려
저자가 오대산에 머무는 동안 가족들의 눈물겨운 노고와 헌신이 이어졌습니다. 부모님과 아내, 형님들은 서울에서 200km가 넘는 거리를 번갈아 오가며 저자가 먹을 녹즙 재료를 공수하고 치병 도구들을 세심하게 챙겨주었습니다.
마을 이장님을 비롯한 이웃들도 저자가 운동을 나가 보이지 않으면 혹시 잘못되지 않았나 걱정 어린 눈으로 살피며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철저하게 자연치유적 원칙에 입각한 식단을 고수하느라 이웃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챙겨주려는 음식조차 일절 손대지 못했지만, 주변의 이러한 따뜻한 배려와 걱정은 치유 과정에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인근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을 맨발로 걷고 고요히 호흡에 집중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았고, 월정사 스님들 역시 주차 배려 등 많은 편의를 보아주며 큰 행운과도 같은 치유의 환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3. 가족과의 만남, 그리고 이별의 쓰라림
오대산에서 지내던 어느 날, 아내와 두 딸이 찾아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보낸 시간은 마치 꿈만 같았고, 위기의 순간에 맞닥뜨려서야 비로소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의 가치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암 진단이라는 큰 시련이 오히려 가족 서로의 존재를 더 깊고 간절하게 느끼게 해 준 선물이 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아빠와 떨어지기 싫어 우는 두 딸을 품에 안고 저자 역시 한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가족들이 떠난 빈자리는 가슴이 뻥 뚫린 듯한 동굴로 남았지만, 이 쓰라린 이별의 고통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명확한 치유 청산진이 있었고 반드시 살아남아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확고한 다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암은 죽는 병이 아니며 얼마든지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슬픔을 뒤로하고 다시 치병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4. 올바른 선택이 가져온 기적적인 회복
결과적으로 저자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처음에 오대산에 들어올 때만 해도 혼자 걷지 못해 쌍지팡이를 짚고 겨우 발걸음을 옮겼던 저자는, 불과 7개월 만에 가파른 산비탈을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오대산의 생태 마을은 절망에 빠졌던 저자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준 치유의 공간이자, 제2의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따뜻한 품이 되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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