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식품 먹는 게 나쁠까? 참는 스트레스가 더 나쁠까?
1. 암 환우들의 이분법적 고민과 명확한 지향점
많은 암 환우가 암 치유에 방해되는 가공식품을 억지로 참으면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먹고 싶은 것을 기분 좋게 먹는 편이 낫지 않느냐고 질문합니다. 스트레스 자체가 암의 원인이자 몸을 망가뜨리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딜레마에 대한 치병의 답은 양자택일이 아니며 매우 확고합니다. 올바른 지향점은 가공식품은 절대 먹어서도 안 되고,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과정에서 나쁜 스트레스를 받아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암의 의미를 되새겨볼 때, 평소 좋아하던 가공식품을 비롯한 금기 식품들을 멀리하는 일은 치병의 당위론적인 첫걸음입니다.
2. 무의미한 고통과 유의미한 스트레스의 차이
흔히 스트레스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치부하지만,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주하는 스트레스는 오히려 활력을 불어넣고 효율을 높여주는 좋은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들을 길들이기 위해 자행되었던 무의미한 강제 노동의 사례가 좋은 예시가 됩니다. 포로들에게 오전 내내 삽질하며 땅을 깊게 파게 한 뒤, 오후가 되면 그 구덩이를 다시 흙으로 메우게 하는 일입니다. 똑같은 노동이라도 아무런 결과물이나 의미 없이 미치는 고통을 반복하게 하면 포로들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일방적으로 무너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몸을 황폐화하는 나쁜 스트레스입니다.
반면, 어떤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쏟는 유기적인 노력과 과정 속에서의 인내는 예술가의 창작 고통처럼 삶의 의미와 목표를 부여합니다. 비록 창작과 성취의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고 고될지라도, 이를 통해 달성하는 값진 성과와 보상은 삶에 커다란 활력이 되는 좋은 스트레스가 됩니다.
3. 암 치유 초기 단계의 생존 욕구와 고통의 극복
치병을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는 과거에 즐겨 먹던 가공식품이나 음식을 먹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찾아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과 내 가족의 운명, 행복, 그리고 목숨이 달린 온전한 치유라는 원대한 목표 앞에 서 있다면, 먹고 싶은 단순한 욕구는 생존의 욕구 앞에서 당연히 제압당해야 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전한 치유 청산진 아래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가공식품을 먹는 행위는 스스로 치유 체계를 무너뜨리는 심리적 고통이자 타협이 될 뿐입니다. 이러한 무분별한 먹거리 타협이 반복되면 결국 온전한 치유를 이루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죽어가는 비극적인 과정으로 귀결됩니다.
4. 치유 청산진을 통한 좋은 스트레스로의 전환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참는 행위가 나를 파괴하는 나쁜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인체 복원과 치유를 향한 명확한 치유 청산진이 머릿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이 음식을 참아야 하고 이 치병 노력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맥락과 근거, 논리를 모른다면, 식이를 조절하는 모든 과정은 포로들이 의미 없이 땅을 팠다 메우는 무의미한 견딤의 과정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하지만 확고한 치유 청산진 아래 총체적인 자연치유 노력을 전개해 나간다면 양상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음식을 참고 절제하는 과정의 노력과 인내는 암을 온전히 치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내 몸을 건강하게 재창조하는 위대한 밑거름이 됩니다. 가공식품을 끊어내는 어려움은 나를 파괴하는 고통이 아니라, 치유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강력한 윤활유이자 힘을 주는 좋은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진정한 삶의 활력제가 됩니다. 지금 실천하고 있는 자연치유의 인내와 노력이 나쁜 스트레스인지 혹은 나를 살리는 좋은 스트레스인지는 환자 본인의 명확한 청산진과 확신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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