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의 발생과 치료, 그리고 면역항암치료의 등장
1. 정상 세포의 변이와 돌연변이 축적이 일으키는 암의 발생
우리 몸은 약 삼십조 개의 엄청나게 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포들은 매일 정해진 규칙에 따라 복제하고 분열하며, 수명이 다하면 죽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채우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한 사람이 평생 겪는 세포 분열의 횟수는 무려 일경 번에 달하는데, 이 엄청난 복제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디엔에이 정보가 복제되는데, 이때 실수가 생겨 유전자에 변형이 일어나는 것을 돌연변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몸은 오랜 진화를 통해 복제 실수를 교정하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나이가 들고 발암물질에 오래 노출되면서 돌연변이가 계속 쌓이면 결국 정상 세포가 통제를 벗어나 마음대로 자라나는 암세포로 변하게 됩니다. 인류는 이러한 암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라는 대표적인 무기들을 개발해왔습니다. 수술은 몸을 열고 칼로 암 덩어리를 직접 떼어내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방법으로 다른 장기로 퍼지지 않은 초기 암을 완치하는 데 중요합니다. 방사선 치료는 강력한 빛을 암 부위에 쬐어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으로, 수술하기 힘든 위치의 암을 치료하거나 통증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2. 현대 암 치료의 삼대 무기인 수술, 방사선, 그리고 항암요법
항암치료는 전신에 퍼진 암세포를 공격하기 위해 약을 주사하거나 먹는 방법입니다. 가장 먼저 개발된 세포독성 항암제는 암세포가 일반 세포보다 빠르게 분열한다는 특징을 노려 공격합니다.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효과가 있지만, 정상 세포 중에서도 분열이 빠른 머리카락 모낭세포, 위장 점막세포, 골수세포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탈모, 구토, 설사, 빈혈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표적치료제는 암세포가 가진 특정한 분자나 유전자만 유도 미사일처럼 정밀하게 조준해 공격합니다. 세포독성 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좋지만, 암세포가 치료제의 공격을 피해 또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며 내성을 키우기 때문에 보통 일 년 정도 지나면 약효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새로운 무기가 바로 면역항암치료입니다. 면역항암치료는 약물이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원래 가지고 있는 방어 체계인 면역계를 활성화하여 스스로 암세포를 찾아내고 파괴하도록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치료법입니다.
3. 우리 몸의 철통 보안 시스템을 구성하는 선천면역과 적응면역
면역항암치료를 이해하려면 우리 몸의 철통같은 보안 시스템인 면역계를 알아야 합니다. 인체의 면역계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적이 침투했을 때 신속하게 작동하는 선천면역과 적응면역으로 나뉩니다. 선천면역은 피부나 점막 같은 방어막과 대식세포, 엔케이세포 등이 담당하며, 적의 구체적인 종류를 따지지 않고 대략적인 패턴을 보고 빠르게 반응합니다. 선천면역세포들이 적과 싸우며 시간을 버는 동안 적응면역이 가동됩니다. 적응면역은 적이 가진 독특한 정보인 항원을 인지해 공격하는 고도의 전문 부대입니다. 여기에 속하는 티세포와 비세포는 한번 싸운 상대의 약점을 기억해두는 면역 기억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세포는 체액 속의 적을 공격하는 항체를 만들어내고, 티세포는 세포 내부에 침투한 병원균이나 암세포 같은 이상 세포를 직접 대면해 제거하는 강력한 살상 역할을 합니다. 여러 티세포 중에서도 암세포와 직접 백병전을 벌여 물리치는 가장 중요한 핵심 세포가 바로 세포독성 티세포, 즉 시디팔 티세포입니다.
4. 면역세포와 암세포의 끊임없는 공방전과 삼 단계 면역 조절
티세포와 비세포는 처음에 스스로 적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훈련해주는 교관이 필요합니다. 선천면역에 속하는 수지상세포가 이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항원제시세포입니다. 수지상세포는 침입자를 잡아먹은 뒤 잘게 쪼개어 자신의 표면에 붙이고, 림프절이라는 신병 훈련소로 이동해 티세포에게 적의 정보를 입력합니다. 교육을 잘 마친 티세포는 훈련소를 나와 혈관을 타고 전쟁터로 향합니다. 우리 몸에서는 면역세포와 암세포 사이에 깨지지 않는 끝없는 싸움이 벌어지는데, 이를 제거, 균형, 회피의 삼 단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제거 단계에서는 매일 복제 오류로 생겨나는 암세포를 면역계가 끊임없이 감시하며 바로바로 지워버립니다. 이를 면역 감시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거나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암세포가 더 많이 생기면 생성 속도와 제거 속도가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는 균형 단계에 들어섭니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더 쌓여 암세포가 면역세포를 속이고 공격을 피하는 능력을 얻으면, 암세포가 무섭게 증식하며 덩어리를 만들고 전이를 시작하는 회피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5. 암항원 방출에서 백병전까지 암 면역 순환 일곱 단계
면역계가 암세포를 인지하고 훈련하여 공격하는 일련의 과정은 암 면역 순환이라는 일곱 가지 단계로 일어납니다. 일 단계는 암조직 내부에서 암세포가 죽으며 암항원을 방출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수지상세포 같은 항원제시세포가 이 암항원을 잡아먹고 분해해 세포 표면에 제시하는 단계입니다. 삼 단계는 항원제시세포가 림프절 훈련소로 이동해 신병 티세포에게 암항원 정보를 전수하여 티세포를 활성화하고 수를 늘리는 단계입니다. 사 단계는 준비를 마친 티세포들이 혈관을 따라 암세포가 있는 전쟁터로 이동하는 단계입니다. 오 단계는 티세포들이 암조직 주변의 혈관 밖으로 빠져나가 적을 수색하는 단계입니다. 육 단계는 티세포가 자신이 교육받은 정보와 일치하는 암세포를 찾아내는 단계입니다. 칠 단계는 티세포가 암세포에 달려들어 백병전을 벌이는 단계입니다. 티세포는 퍼포린이라는 단백질로 암세포 표면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 안으로 그란자임이라는 세포 폭탄을 집어넣어 암세포를 완벽하게 사멸시킵니다. 암세포가 죽으면 다시 암항원이 방출되면서 순환이 계속 돌아가게 됩니다.
6. 면역관문 단백질을 악용하는 암세포의 비열한 회피 속임수
암세포는 살아남기 위해 이 순환을 방해하는 교활한 속임수를 씁니다. 항원을 변형시키거나 티세포가 암조직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기형적인 혈관을 만듭니다. 가장 강력한 속임수는 티세포의 공격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면역관문을 악용하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몸에는 면역반응이 너무 과도해져 정상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을 막기 위해 면역반응을 끄고 켜는 스위치인 면역관문 안전장치가 존재합니다. 티세포 표면에 있는 피디원이나 시티엘에이포 수용체가 상대 세포의 특정 단백질과 만나면 공격 중지 신호가 켜집니다. 암세포는 이를 악용해 자신의 표면에 피디엘원 같은 면역관문 단백질을 잔뜩 만들어 붙집니다. 티세포가 암세포를 죽이려 다가가다가 이 공격 중지 신호를 보고 속아 넘어가 공격을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의 이 속임수를 차단하는 약입니다. 약물이 티세포의 수용체나 암세포의 단백질에 미리 달라붙어 둘이 결합하지 못하게 방해하면, 티세포는 속지 않고 암세포를 정상적으로 공격해 사멸시킵니다.
7. 면역관문억제제가 가져온 치료 패러다임의 혁신과 인류의 희망
면역관문억제제는 다른 항암제들과 확실하게 구분되는 차별적인 장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약물이 암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공통적인 면역계를 활성화하기 때문에 한 가지 약으로 여러 종류의 암에 모두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면역 기억 능력 덕분에 약물에 좋은 반응을 보이는 환자들은 치료 효과가 이삼 년 이상 장기간 유지되며 일부는 완전히 완치되기도 합니다. 셋째, 정상 세포를 무차별 공격하지 않으므로 구토, 탈모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적어 체력이 약한 고령의 환자들도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의 면역력으로 암을 고치려는 시도는 실패의 연속이었고 의학계의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면역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암이 면역계에 걸어둔 브레이크를 풀어주는 면역관문억제 원리가 밝혀지면서 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거 페니실린의 발견이 감염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했던 것처럼, 면역항암치료는 암이라는 거대한 공포로부터 수많은 환자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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