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학습하는 사람들
시한부 진단 직후의 혼돈과 공포
시한부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일주일 동안은 그야말로 지독한 혼돈의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질 어린 자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불행이 자신에게 현실로 닥쳤다는 사실에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듯한 단절감을 느꼈습니다. 두려움, 절망, 당황스러움, 억울함과 원망 등 평생 겪어보지 못한 극단적인 감정들이 휘몰아쳤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나쁜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뼈를 깎는 듯한 통증은 자신이 피할 수 없는 말기 암 환자라는 잔인한 현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결국 꿈이 아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뼈 전이 통증 앞에서 무력하게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암 환자 커뮤니티의 냉혹한 현실
현실을 마냥 거부하며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밤을 새워가며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암 관련 카페들을 찾아 가입했습니다. 무언가 유용한 치유 정보나 희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곳의 결과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에 따르면, 저자와 같은 말기 상태의 환자들에게 기적적인 희망을 이야기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초기 암 환자들조차 재발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며, 투병 중인 환자들은 물론이고 질문에 답을 주는 사람들까지도 모두가 '암 환자는 결국 죽는다'는 하나의 진실을 당연한 전제로 깔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암을 곧 죽음으로 규정해 둔 채, 어떻게 하면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생명을 단 몇 달이라도 연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만 가득했습니다. 특정 약을 먹고 발생할 부작용을 서로 묻고 답하거나, 말기 환자들끼리 서로를 위로하고 슬퍼하며 한탄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만 공유될 뿐이었습니다.
죽음의 학습과 치명적인 영향
암 투병 커뮤니티에는 병원 치료와 관련한 지엽적인 정보들만 가득했을 뿐, 암이 왜 생기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설명이나 이미 치유된 사람들의 희망적인 성공 수기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간혹 누군가가 자연치유를 통해 극복했다는 글을 올리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근거가 없는 내용이라며 혼란을 부추긴다고 비난하고 몰아내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패배주의적인 글들을 지속적으로 읽다 보니, 저자 역시 깊은 무력감에 빠져들며 자신도 모르게 '나도 조만간 죽을 것'이라는 공포를 내면화하게 되었습니다. 정보를 얻으려던 과정이 오히려 죽음을 체계적으로 학습하는 치명적인 계기가 되고 만 것입니다. 당사자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환경에서 죽음을 학습하는 행위는 환자의 심리에 매우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칩니다.
거부와 새로운 결단
저자는 다른 일반적인 환자들처럼 암을 필연적인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무력하게 마지막을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이대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채, 고작 한두 달의 생명을 연장하겠다고 병실 천장만 바라보며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삶의 소중한 마지막 시간들을 허비할 수는 없었습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오직 다시 건강해져서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는 삶만을 원했고, 죽어가는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자는 노트북 화면을 단호하게 닫고 암 카페를 탈퇴했습니다. 죽음을 당연하게 학습하고 패배주의를 공유하는 공간에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절망적인 환경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 무력한 죽음이 아닌 적극적인 삶과 치유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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